정부가 휘발유나 경유에 붙는 유류세를 낮추는 방안을 꺼내들었다.

10년 전(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개월 동안 유류세를 낮춘 적이 있다. 10년 만에 유류세 인하 카드를 다시 꺼낸 배경에는 최근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금이 예상보다 잘 걷혀 나라 곳간 형편이 괜찮다는 사정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유류세 인하 규모는 정해지진 않았지만, 10% 안팎의 세금을 깎아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시행되나, 실제로 혜택은 유류 소비가 많은 부유층에게 더 돌아가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MF/WB 연차총회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 중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웨스틴호텔에서 동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유류세 인하 검토 배경은?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13일 IMF·WB 연차총회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었기 때문에 특히 영세소상공인, 중소기업, 서민에 압박이 될 수 있다"며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문제를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둘째주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 주보다 15.4원 오른 리터당 1674.9원이다.

이는 지난 2014년 12월 둘째 주 이후 약 3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가 1배럴에 80달러를 넘어서는 등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공행진 중인 기름값이 영세 상인과 중소기업, 서민에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8년 3월10일부터 12월31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유류세를 일괄적으로 10% 내린 적이 있다. 2000년에도 3월부터 4월까지 2개월 간 휘발유와 경유의 유류세를 각각 5%, 12% 내리기도 했다.

유류 관련 세금은 조금만 낮춰도 세수가 크게 감소하나, 현재의 세수 호황 기조로 인해 재정에 미치는 부담이 크지 않다는 부분도 세금 인하 배경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8월까지 국세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조7000억원이 더 걷혔다.

4달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연간목표액의 80%(세수진도율, 79.5%)에 육박한다.

유류세 얼마나 낮출까?

유류세를 인하하겠다는 정부의 방향성만 밝혀졌을 뿐, 구체적인 세금 인하 규모라든지 인하 기간에 대해선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대체적으로 유류세 인하 폭은 10% 안팎으로 보고 있고, 일부에선 20%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자동차세, 교육세가 부과된다. 유류세는 기본 세율 30% 범위 안에서 정부가 탄력 세율을 적용해 조정할 수 있다.

가령 휘발유의 기본세율은 리터당 475원인데, 탄력세율이 적용되면서 529원이 부과된다. 주행세(리터당 138원), 교육세(79원)가 더해진 유류세는 총 746원이다. 여기에 휘발유의 부가가치세인 리터당 149원까지 포함하면 휘발유에 붙는 전체 세금은 리터당 895원이다.

지난달 기준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이 1638원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54.6%다. 경유와 LPG·부탄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5.9%, 29.7%다.
 
유류세를 10% 인하한다고 가정해보자. 10월 첫째 주 기준 전국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660원으로, 세율 인하가 100% 가격에 반영된다면 1578원(4.9%↓)으로 82원이 싸진다. 같은 조건으로 경유는 리터당 1461원에서 1404원으로 57원이 저렴해지고, LPG·부탄은 리터당 925원에서 904원으로 인하된다.

정부가 한 해 거둬들이는 유류세 규모는 26조원 수준으로, 연간 유류세를 10% 인하하면 2조6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 과거 사례를 비추어볼 때 한시적인 시행기간이 1년을 넘지 않음에 따라 세수감소 폭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유류세 인하 효과 있을까?

정부는 이달 하순 발표할 '고용대책'에 이 같은 방안을 넣을 예정이다. 시행령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절차 등을 고려하면 이르면 31일부터 휘발유·경유·LPG 부탄에 붙는 유류세가 인하될 전망이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효과가 소비자에게 곧바로 혜택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유류세 인하 조치는 정유사들의 출고분부터 적용되기에, 실제 소비자들은 기존 물량이 소진된 다음에나 인하된 가격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정유사-대리점-주유소로 이어지는 유통과정에서 세금 인하분이 흡수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00년 3월에도 세금을 리터당 39원 인하했지만 휘발유 가격은 최대 26원 내리는데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유류세를 일괄적으로 인하할 경우 소득 수준 등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지원되기에, 유류소비가 많은 고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보고서(2012년)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는 서민층보다 부유층에 6.3배 이상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일괄적인 유류세 감면보다, 영세민·영세 자영업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선별적·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정 수준의 기름값 추이에 따라 세율을 올리고 내리는 등 탄력세율 조정도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된다.